심다공증

이 자리는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다
이 자리는 대타가 들어올 수 없는 자리다
이 자리는 이제는 당신도 비집고 들어 올 수 없는 자리다
이 자리는 다만 나의 자리다
이 자리는 텅 비어있다

나는 왜 순수한 삐짐에 몰두하지 못할까?

빌어먹을! 나도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부다.
어떻게 삐진 게 단 이틀을 못가냐?
왕년에는 한번 삐지면 다시는 얼굴을 안 보기도 했었는데…
슬프다.
이제 삐질 만한 일도 자꾸만 줄어들어간다.

등나무 그늘에서

이봐 그쪽으로 가지마 그쪽으로 가면 안 돼 그쪽에는 아무도 없어 그러나 굳이 아무도 없는 쪽으로만 뻗어나가는 등나무 가지 하나 허공을 움켜쥐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움켜쥐어도 그건 그저 허공이다 허공은 빌 ‘허’ 자에 빌 ‘공’ 자를 쓴다 그러고 보니 어느 결에 나도 빌 ‘허’ 자에 빌 ‘공’ 자를 쓰게 되었나 보다 이제 내게로 가지를 뻗어오는 이는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

아파트에서 듣는 비소리는 영 그렇다.
한없이 F에 가까운 D학점 정도나 될까.

그러고 보니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 비소리 들어본지도
오래 되었다. 또 雨期가 시작되었다.

사교계에서 말하는 방법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후작부인은 캉디드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서 소파에 앉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아직도 툰더 텐 트롱크의 퀴네공드를 열렬히 사모하나요?”

“네, 부인!”

캉디드의 대답에 후작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당신은 베스트팔렌 출신 젊은이답게 대답하는 군요. 프랑스 젊은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예요. ‘퀴네공드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인! 당신을 보니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어 버릴까 두렵군요.’ 라고 말입니다.”

─ 낙천주의자, 캉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