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부터 1995년 5월까지 15년여 동안 군대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의 수는 무려 8951명이다. 이 기간에 우리가 혹시 다른 나라와 남모르게 전쟁이라도 치렀던가? 전쟁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해마다 600명 가까운 ‘군인’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 한겨레21, 2005년07월05일 제567호
삼순이는 삼식이를 좋아해
셋째 딸이라서 이름이 삼순이인
삼순이는 삼식이를 좋아한다
이름 한번 촌스러운 삼순이가 좋아하는
삼식이의 본명은 삼식이가 아니다
이름이야 어떠하건 간에
삼순이와 삼식이는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바퀴벌레들이다.
─ 나는 지금 ‘잘 어울리는 한쌍의 바퀴벌레들’이라고 말했다. 그래, 한때는 이런 표현이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시대 사람이다. 그 빌어먹을 시대. 그건 그렇고
내 본명의 가운데 자는 ‘충성 충’ 자다.
─ 기왕에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글자를 자기 이름에 넣고 살아가야할 웃기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무한 복종해야 하는 ‘충’자 보다는 무한 지배를 할 수 있는 ‘다스릴 치’ 자가 낫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하긴 나보다 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박충재도 있다. 그건 그렇고
‘충’ 자에는 모든 이름을 촌스럽게 만드는 강력한 ‘포스’가 있다. 못믿겠다면 지금 당장 자기 이름의 한 음절을 ‘충’ 자로 바꾸어 보라. 강력한 포스가 느껴질 것이다.
이름이야 어떠하건 간에
충순이와 충식이도 물론
갑돌이와 감순이처럼, 아니
삼순이와 삼식이처럼 잘 어울리는 한쌍의 바퀴벌레들일 것이다.
─ 이런 말까지 해서 구차하다만 내가 ‘것이다’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충식이로 내 아내를 충순이로 부르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를 충식이라고 부르는자, 지옥에나 가라. 그건 그렇고
그런데 삼순이가 충식이도 마음에 들어할까
삼순이는 삼식이를 좋아한다
충식이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충순이 밖에 없다
이름이야 어떠하건 간에
삼순이는 가끔 외롭다
그보다 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충식이의 외로움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이런 제길 왜
삼순이는 삼식이만 좋아할까
삼식이,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이렇게 하루 세번 먹는다고 삼식이가 된
삼식이가 뭐 볼 게 있다고
오, 내 사랑 삼순이. 끝.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1.
잠들기 전에 아들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먹구름은 시커매?
2.
시인이여, 나는 지금
고독하게 오줌을 누다가 문득
죽기 전에 한번 죽어봤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쓸까
아니면
고독하게 오줌을 누다가 문득
죽기 전에 한번 죽어봤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떠올랐다
라고 쓸까
그것도 아니면 아예 아무 것도 쓰지 말까
라고 쓰고 잠이나 잘까
하는 자다가 오줌 누는 소리 같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그런데 심각한이 좋을까
아니면 심오한이 좋을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한심하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오줌만 마렵다
철거와 은유
오래 된 집들이 철거된 자리는
쓰레기가 남몰래 버려지는
시간이 노골적으로 썩어가는
공터가 되어있다
포크레인 한 대가 땡볕 속에서 힘겹다
이제는 이런 풍경이 목가적인 풍경이다
물론 나도 휘갈겨쓴 플래카드가 나붙든 말든
목가적인 풍경 좋아하시네 하며
지나가면 그만이다 문득
이 마음을 다 철거하고 나면
나는 무슨 공터가 될까
내 마음의 공터에서 어떤 모질었던
인생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까
은유적으로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낡은 집들이 철거된 자리는
널직한 공터가 되어있고 그들은
이 공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밀고 다시 까는 것
나는 그새를 못참고 재개발 사업을
다시 컴퓨터에 무책임하게 비유하지만
사실 책임질 수 있는 비유는 많지 않다
그러니 지나가는 것이다
내 집은 벌써 오래 전에 철거되었으니
어머니의 항아리도 다듬이 돌도
다 두고 떠나왔으니
그런데 정말이지 이 쓸쓸한 마음마저 다
철거해 버리고 나면
나는 무슨 공터가 될까 그 공터에서도 누군가가
저 땡볕 속의 포크레인처럼 힘에 겨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