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실의 아침 메모

치실에 묻어나온 돼지갈비 조각
이를테면 치욕이여
어제는 내가 너를 끼고 잠들었구나
그런데 어제
나는 무슨 정신으로 잠들었던 것일까

내 기억의 틈새에 끼어있는 어떤 조각
치실은 결코 가 닿지 못하는

저울에 달아 본 몸
내가 이만큼 나가는구나

아침이다
모든 갈라진 틈에서
내가 새어나간다

아침이다
써야할 문장도
불러야할 노래도 없는

눈썹의 용도

눈썹은 왜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건 눈 속으로 땀이 흘러드는 걸 막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뛰어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개나 소나 다 이 세상에서 어떤 쓸모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쓸모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게 개나 소에게 위로가 될까.
아니면 개나 소 노릇을 하는 구실이 될까.

아무튼 이 따위 쓸 데 없는 생각은 그만하는 게 좋겠다.

한 바퀴만 더 돌자. 헉헉.

교양

디트리히 슈바니츠(지음), 인성기 외(옮김), <<사람이 알아야할 모든 것, 교양>>, 들녘, 2001(초판 1쇄), 2002(초판 30쇄)

내가 읽은 판본이 초판 30쇄이니 제법 많이 팔렸다. 엄청 두껍다. 부제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인데 태반은 모르는 것이니 나는 사람도 아닌가, 라는 생각을 3초간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거의 읽지 않았고 2부는 다 읽었다. 그 중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의미를 언어 형태로부터 걸러낼 수 있는 사람만이 의미에 다른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는 건가?
그것은 일상의 의사소통이 우리에게 이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교사가 자신의 교실로 막 들어가려는 데 교실에서 “으악”하는 고함소리가 들린다고 치자. 그가 문을 와락 열어 젖히자 바보 같은 학생 몇 명이 모여서 이를 허옇게 드러내며 씨익 웃고 있다. 교사가 묻는다. “무슨 일이야?” 이제 이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르게 대답하는 두 학생, 에밀과 알베르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에밀이 말한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여기 이 알베르트가 저한테 ‘암퇘지 같이 겁 많은 놈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뭐라구 똥구멍 같이 더러운 놈아! 한 번만 더 말해봐. 네 주둥이를 묵사발로 만들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한테 ‘너는 겁이 많아서 아마 있는 힘을 다해 큰 소리도 못지를 거야. 어디 한 번 내기해 볼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아,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무등태워 주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여기 있는 카를 하인츠 한테 ‘봐라. 지금 에밀이 꽁지를 슬슬 빼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내가 꽁지를 뺀다고’라고 말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저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반면에 알베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고 치자.
“우리는 에밀이 정말로 있는 힘을 다해 크게 소리를 지를지, 아니면 안 지를지에 대해서 한심한 내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두 학생 중에서 누가 더 똑똑한 학생일가?

나는 내 아이를 시험에 들게 했다.
“아빠가 지금부터 어떤 이야기를 할 텐데 그걸 간단하게 요약해봐. 알았지?”
“응.”
“아빠는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자다가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책을 보다가 다시 잤어. 그리고 일어나 보니까 아침이었어.”

오늘의 문장

“꽃들은 사시사철 비바람을 맞으며 바깥에서 산다오, 그들에겐 집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