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밖 세상에
안개가 자욱하고
내가 탄 아파트가
한 척 쓸쓸한 배로 떠있다
“배가 있었네
작은 배가 있었네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네
멀리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나는 어쩐지 조동진의 노래를
낮게 흥얼거렸다
엊그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작은 배에서 내려
씩씩하게 학교로 갔다
나도 아파트에서 내려
800번 버스를 타고
“이번 정차할 곳”을 지나
“연희동 104 고지, 구 성산회관 앞”을 지나
“서대문우체국 앞”을 지나왔다
지나오기는 왔는데
문득 더 갈 곳도
내려야 할 곳도 모르겠다
너 멀리 떠나고 싶다며?
당연하지!
그런데 너 멀리 떠날 수 없다며?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