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씀,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2010

1.
지난 주 수요일 저녁, 노모를 모시고 어디를 좀 다녀 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리는데 받을 수가 없었다. 통화 버튼을 눌러야 통화가 되게끔 설정을 해 놓았는데 통화 버튼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눈 뜨고 부재중 전화 1통이 단말기에 찍히는 걸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었다. 핸드폰을 껐다 켜서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요일, 아무 일도 없었다. 금요일 아침, 일어나 습관처럼 핸드폰 슬라이드를 밀어올리니 핸드폰 액정이 나갔다. 대란이다. 껐다 켜니 다시 들어 온다. 별일 아니군. 그런데 결국 별일 아닌 게 아니었다. 액정은 저 스스로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했고, 전화를 오면 받을 수 없었으며, 문자를 받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 길이 없었다. 금요일 밤, 누군가가 새로 장만한 자신의 아이폰 구경도 시켜주고, 술도 사주고 그랬다. 그는 내 핸드폰이 때 맞춰 식물 핸드폰이 된 건 다 아이폰을 마련하라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시라고도 했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식물 핸드폰의 전원을 인가했다 해제했다 해가며 버텼다. 아이폰이 눈에 아른 거렸다. 화요일, 결국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AS기사는 핸드폰의 위쪽 판과 아래쪽 판을 연결해 주는 케이블이 상했다고, 교환해야 한다고 15분 정도 걸린다고, 언제 구입한 거냐고, 그러면 무상수리는 어렵고 비용이 좀 발생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비용이 거액이기를 속으로 빌었다. 홧김에 서방질 할 작정이었다. 불행중 다행인지 다행중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용이 얼마 안 됐다. 아이폰은 내 것이 아니었다. 수리를 마친 AS기사가 조그만 쪽지를 내밀었다. 자신이 얼마나 친절했었는지 표시해 달라는 거였다. 매우 친절!
그런데 아니었다. 집에 왔는데 버튼을 조작할 때 켜지는 백라이트가 들어오질 않았다. 여러 가지 하는군! 다시 버스 타고 가서 번호표 뽑아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왔길래 접수대 직원한테 여차저차 하다 말했더니 오전에 서비스 받았던 거면 직접 기사한테 가라고 했다. 끙. 갔다. 가서 살짝 불평했다. 이거 안 된다. 오고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썼다. 이게 뭐냐? AS기사는 자신이 교체한 부품과 이 증세와는 무관한 거라고 살짝 변명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뜯어봐야 알겠으며 추가비용발생 여부도 마찬가지란다. 기다리란다. 이거 메피스토펠레스가 곱게 안 지나가는군! 천장에 매달린 텔레비전에서 철지난 ‘1박2일’ 을 멍청히 보며 시간을 죽이는데 AS기사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내 핸드폰의 윗부분 케이스를 통째로 거저로 교환해주었다고 생색을 냈다. 중고차 도장을 새로 해준 것도 아니고 아예 차 껍데기를 새걸로 바꿔준 셈이었다. 핸드폰에서는 광이 번쩍번쩍 났다. 아이폰은 물 건너 갔다. 수요일 밤, 전화가 오는데 낯선 전화번호가 찍힌다. 받으니 그 AS기사다. 수리 받은 핸드폰 이상없이 잘 쓰고 계시냐는 거였다. 시계를 보니 7시 반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고맙다고 어서 퇴근하시라고 말해주었다. 이게 우리가 아는 삼성이다. 이 책에는 또 하나의 삼성이 있다.

2.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비자금의 세계이다. 비자금은 “회계에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은 자금”을 말한다. 이 책은 비자금의 세계를 살아가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다.

이러고들 있다


놀이터에 나가 비비탄을 잔뜩 주워다 목욕시켜 물기 닦는 중.
500ml 페트병 반을 거뜬히 채우는 양. 부모가 안 사주니 자급자족.

어제 어느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

노인은 60년대 중반에 군에 입대했다. 훈련병 시절, 일요일이면 해야하는 사역이 너무 힘들어 종교행사 참석을 선택해서 열외병이 되었다. 너무 많은 사병들이 열외병이 되자 사역을 해야할 병사가 부족해 화가난 하사관이 다가와 갖은 욕설을 퍼부어 댔다. 그러고도 분이 덜풀렸는지 그 하사관은 사병들에게 무조건 담배를 물라고 시켰다. 그것도 한 개비도 아니고 세 개비였는데 하나는 입에 물고 둘은 양 코구멍에 물어야 했다. 열외병들은 그 상태에서 담배에 점화를 한 다음 군종병의 구호에 맞춰 구보로 교회로 이동을 해야 했다. 담배 연기를 아니 마실 재간이 없었다. 노인은 그렇게 해서 담배를 배우게 됬다며, 이제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러고들 있다.

형: 우리 또 ‘숨꼭’ 할까?
동생: 그래.
형: 이번엔 니 이불로 하자.
동생: 좋아. 하지만 내 이불한테 허튼 짓 하면 안 돼!
형: 알았어.

네, 말씀드리는 순간 형 선수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하나부터 서른까지 세기 시작합니다. 동생 선수는 숨을 곳을 찾아 재빨리, 그러나 조용히 움직입니다.

이러고들 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숨박꼭질을 한다. 숨을 데도 없는 것 같은데 지들끼리는 제법 재미 있게 논다. 초코파이를 먹다보면 부스러기를 흘리게 마련이고, 숨박꼭질을 하다보면 자연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아래층에 고3이 사는데 쿵쾅거리다니. 아이들이 쿵쾅거릴 때마다 내 심장도 쿵쾅거린다. 나는 꼰대답게 주의를 준다. “숨박꼭질 하는 건 좋은데 쿵쾅거리지는 말어.” 그러면서 내 말이 숨 쉬지 말고 뛰어 놀라는 말과 뭐가 다른 지 잠시 생각해 본다. “네.” 대답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막대가 대답을 한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쿵쾅거리며 숨박꼭질을 하고 그때마다 내 심장도 여전히 쿵쾅거린다.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