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치하의 국민 여러분! ‘되다’ 많이 사용하시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삼성전자 서비스 텔레마케터가 나중에 피드백 전화가 걸려올 거라며 하는 말: 잠시 후 좋은 상담 되십시오. 얼마 전에는 운전하는 사람에게 그럼 좋은 이동 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지금도 인천공항 출국장 전광판에는 좋은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라고 반짝거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 뭐. 그럼 좋은 눈싸움 되세요, 따위 주니어님들.

모임은 즐거워

어제 낮에 광교산 자락 어느 식당에서 열린 모종의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좌장격인 사람이 시종일관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얘기만 장황하게 떠들어 대는 바람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이건 뭐 유치원생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들어 있는 단어에만─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반응하면서 상대방 말을 자르고 제 입만 놀려대니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비싼 기름 써 가며 천리길을 운전하고 왔는데 연장자에 대한 예우상 묵묵히 듣고만 있자니 속에서는 열불이 났다.

내 경멸을 눈치 챈 것일까? 모임을 파하느라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는 자리에서 그는 새삼스럽게 악수를 청하며 자기가 말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이크, 끝까지 거리를 두었어야 했는데 방심하다가 당했다. 아닙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나는 의례적인 멘트를 쳤다. 우웩, 내 멘트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면전에서 표나지 않게 사람을 경멸하려면 잠자코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즐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의 말에 간간히 추임새도 넣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만난다. 겉과 속이 다르게.

며칠 전 반상회 다녀온 아내에게 오늘 아침 전해들은 이야기.

태권도장에 다녀오는 우리집 머스마들이 엘리베이터의 108층의 버튼을 누르자 107층 사는 아랫집 여자는 생각한다. 이것들이구나. 이 잡것들이 허구헌 날 쿵쾅거리며 뛰는 놈들이구나. 이 놈들아, 내 아들이 고3이다. 잘 걸렸다. 한 마디 해줘야겠다.

여자: 너희들 집 안에서 맨 날 뛰지?

언: 아니요, 기쁜 일이 있을 때만 뛰어요.

여자: 그럼 너희는 맨 날 기쁘냐?

언: 네.

내년에는 우리집 애들이 더 많이 쿵쾅거리게 하옵시고, 다만 층간 소음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해주시길 바라나이다. 지금까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나이다. 아멘

“늘 곁에 두고 먼지가 쌓일 틈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읽어라!”

며칠 전 인터넷 서점에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오늘이 예정된 배송일이었는데 1월 2일에나 책이 도착하겠다고 오전에 문자가 왔다. 아이가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유감이군.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연말이라서 바쁜 모양이니 급할 것도 없는데 참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렇게 마음을 먹고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방학 하고 온 아이, 오자마자 책을 찾는다. 사정을 말해주니 실망을 해도 이만저만 하는 게 아니다. 남친한테 차여도 그 표정보단 낫겠다. 음, 혹시 모르니 전화나 걸어볼거나. 전화를 걸어 체감 시간 3분 동안 시키는 대로 이 번호 저 번호 눌렀댔더니, 허무하게도 한두 시간 이내에 피드백 전화를 준다는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고 전화가 툭 끊긴다. 기계한테 진상 부릴 수도 없고 난감하다.

전화 오기로 한 시간은 애저녁에 다 지나갔다. 그렇지 뭐, 잊어야지 뭐, 하고 있는네 “고객님의 상품은 09:00~12:00에 배송될 예정입니다”라는 문자가 온다. 날짜가 없으니 언제 온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데다가 오전인지 오밤중인지 시간이 또 애매하다. 책 따위가 무슨 고도도 아닌데 오기는 오는 건가.

베란다에서 컴퓨터용 ‘DB-77 강력먼지제거제’로 흡입력이 약해진 진공청소기 필터를 청소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포스트맨이 누르는 것도 아닐진대 벨이 두 번 울린다. 누구지? 아이가 나간다. 아빠, 책이야. 책이 왔어. 아이가 급방긋하며 뛰어 들어온다. 뜯어 보렴.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선물 대용으로 사준 몇 권의 책이 도착하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다저녁에 보통 때는 통 아니 울리는 집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 인터넷 서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로 달려가는 아이를 제지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받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강가딘입니다.” 헐, 일찍도 전화하시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55분이다. 순간, 여차 저차 해서 이렇고 저렇고 하니 이리 저리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려다가

날도 날인데다 텔레마케터가 무슨 죄랴 싶어서 “결론만 말씀드리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고 말았다. “예, 그러세요? 안녕히 계세요” 한다.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목은 함께 배달돼온 내 (몫의) 책에 인쇄돼 있는 문장이다.

형제

아빠, 가자.

소피 마르소와 뽀뽀하기 직전이었는데, 북극에 갖다 놔도 될 만큼 단디 챙겨입은 아이들이 내 단 낮잠을 깨운다. 망할 놈들.

가? 가긴 어딜 가?

어디긴 어디야, 보충 놀이 가야지.

보충 놀이? 그게 뭔데?

어허, 이거 왜 이러셔. 어제 밤에 놀이터 나가 놀아 준다 해 놓고 안 놀아 줬잖아. 놀이터 가는 거 빼먹었으니까 보충 놀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