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톤이여, 러시하라.

서로가 서로에게 장난감인 엽과 언, 월요일 아침부터 밥상머리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전술에 대한 심오한 대화를 나누며 자꾸만 포톤 러시, 포톤 러시, 한다.

아니, 포톤 러시라니! 그게 말이 돼? 그렇잖아도 까까판 마음을 꽊 억누르며 끙 하고 있던 나, 드디어 도화선에 불을 당긴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뉴클리어 런치 디텍티드! 쓰리, 투, 원, 발쏴아아!

야. 이 무식한 것들아, 포톤이 어떻게 러시를 하냐? 포톤이 러시를 하면 바위도 러시를 하겠다. 하라는 사서삼경 공부는 안하고 아침부터 돼도 않는 용어로 돼도 않는 스타크래프트 얘기나 하고 자빠졌구, 참 자알 하는 짓이다. 아주 장래가 촉망된다. 엉. 대체 니들은 누구 닮아 그러냐. 엄마, 닮았냐? 엉? 그 나이 먹도록 사전에서 러시 한 번 안 찾아 보고 여태 뭐하고 살았냐? 엉? 그러고도 니들이 지식인이야. 니들이 아침밥을 먹을 자격이나 있어? 엉? 에잇, 앞뒤로, 안팎으로, 전국이 골고루 무식한 것들 같으니라구.

애들은 포톤이 러시 할 수도 있지, 뭘 그딴 걸 가지고 흥분하시고 그러시나, 하는 얼굴로 날 빤히 쳐다 본다.

러시는 말야, 우르르 달려가는 거야. 너희 바위가 우르르 달려가는 거 봤어? 못 봤지? 포톤이 러시를 할 수 있으면, 사대강 주변 산에 사는 나무들이 우르르 강가로 달려 내려가 포크레인을 박살 내고 바지선을 뒤집어 버릴 수도 있는 거라고. 러시 하고 싶은 데 그걸 못하는 심정 니들이 알기나 알어? 엉? 그건 말야 대시 하고 싶은 데 대시 못하는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야. 알어. 엉? 엇따 대고 포톤 러시야, 포톤 러시가.

애들은 포톤이 러시 좀 하면 어때? 이래서 기성세대는 안된다니까. 역시 지구는 우리가 켜야 한다니까. 그나마 우리 아빠는 좀 다른 줄 아닌데 똑깥아. 역시 꼰대야, 하는 얼굴로 날 빤히 쳐다 본다.

그 천연덕스러운 표정에 앗, 뜨거라, 이게 아닌갑다, 정신을 차린 나는, 나처럼 이제 언어의 와꾸가 꽉 짜여진, 유식하게 말해서 통사규칙이 확고하게 굳어진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설령 삼신 할매가 넷째를 점지해 주신다 하여도, 포톤과 러시를 결합하여 포톤 러시라는 조합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라고 데에 생각이 미치자 무기력하게 분노를 가라 앉히고, 다시 나만의 세계로, 독특한 세계로, 빠져들어 가고 마는 것이었던 거디었던 거시였다.

p.s.
다시 보니 애들 보는 만화책에 포톤 러쉬라는 표현이 있었음.

내가 나에게

엄마, 내가 나한테 안녕이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나한테 안녕이라고 문자가 왔어. 오호, 그래? 그게 되는구나. 엉뚱한 딸 둔 덕분에 좋은 거 하나 배웠다. 그리하여 나도 나에게 가끔씩 문자를 보내기로 한다. 외로운 내가 고독한 나에게, 사람이 그리운 내가 당신이 그리운 나에게, 술 마시고 싶은 내가 감기 걸린 나에게, 아슬아슬한 내가 위태위태한 나에게, 떠나고 싶은 내가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영화 보고 싶은 내가 만화 보고 싶은 나에게, 배 나온 내가 삼겹살 먹는 나에게, 우우, 그리고 빌어먹을 내가 염병할 나에게, 사랑한다고, 행복하라고, 괜찮다고, 곧 나을 거라고, 잘 갔다 오라고, 그만 먹으라고, 정신 차리라고…

일기, 스팸을 구워 먹는 저녁

어제는 오전에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저녁에는 스팸을 구워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였다. 스팸 통조림 하나는 8등분하는 게 무난하다. 8등분한 스팸을 다시 반씩 잘라 총 16 조각의 햄덩어리를 두 번에 걸쳐 구웠다. 1차로 8조각을 식탁에 올렸더니 아이들이 8 나누기 4는 2해서 두 조각씩을 차지한다. 나머지 8조각의 햄이 후라이판에서 익어가는 걸 본 언이 물었다.

아빠, 더 하는 거야?

아니, 빼는 거야.

그러자 우와 엽이 쿡, 쿡, 하고 기가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아내는 열 시가 다 돼서야 돌아왔다.

그대, 후배

나처럼 뾰족한 인간에게도 어쩌다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주는 후배가 있으니, 후배를 잘 챙겨주는 게 모름지기 선배 된 자의 도리이겠으나, 그러지 못하는 내 성정이 이럴 땐 몹시 안타까운 것이다.

“연극의 3대 요소가 뭡니까? 배우, 관객, 무대 아닙니까? 그중에 관객이 없으니 당연히 어렵다고 얘기하는 건데 선배가 설득은 않고 쪽박 먼저 깨버렸잖아요.”
“어떤 놈이 그거래? 틀렸어. 연극의 3대 요소는 타카, 청테이프, 글루건이야. 그거 없으면 연극이 돼? 안 돼?” (식객 115화 돼지 껍데기 편)

내 비록 가난한 연극판에는 얼씬거린 적도 없기는 하다만, 그대와 저런 식으로 대사를 치면서 쐬주 한 잔 하고 싶다. 오늘 밤에도 돼지 껍데기가 초겨울 찬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