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급조한 광복동이 출생기

8월 15일 새벽 4시,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눈이 떠진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아 오늘은 광복절, 태극기 달아야지’라고 생각했을 거 같은가?

따위: (졸린 눈을 비비면서)왜? 아퍼?
아내 : 응
따위: 많이?
아내 : 아니, 아직은 견딜 만해
따위 : 그럼 계속 견뎌라(또 잔다)

아직 견딜만한 아내는 씻는다. 나는 새벽잠을 깬 거이 억울하기도 하고 거사를 치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 심드렁하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뒤척거린다. 아내가 다 씻었다. 내 차례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뒤집어 쓴다. 정신이 맑아온다. 맑은 정신? 맑은 정신이라. 내가 정신이 맑은 적이 있었던가?

출동준비가 끝나니 어영부영 새벽 5시 30분, 아직 작전을 개시하기에는 이른 시간인 것이다. 좀 더 자자. 진통은 30분 간격으로 오고 있다. 좀 더 자도 된다. 또 잔다. 자는 게 남는 거다.

모비딕’에 보니까 ‘Think not, is my eleventh commandment. Sleep while you can, is my twelfth’라고 있더라. 모세의 십계명에 이어서 ‘아무 생각 없이 잠만 디비 자는 게 열한번째, 열두번째 계명이란다’. 내 생활신조와 딱 어울린다. 그러므로 모비딕은 좋은 책이다.

아내가 다시 깨운다. 7시다. 10분 간격 진통이란다. 가끔은 나도 대신 아파 주고 싶을 때도 있기는 있다. 이제 그만하면 움직일 때가 되었다. 짐을 챙긴다.
기엽이가 깨서 나와서는 ‘The very hungry caterpillar’ 틀어 달란다. 뭐가 될라고 저러는지… 누나에게 애 봐달라고 전화를 건다. 온 댄다. 오더니 매형이 새벽 4시에 들어와서 부부싸움 한 게임하고 잠들자 마자 다시 깨서 온 거라고 투덜거린다. 다 동생 잘 둔 덕이다.

아내가 출발하기 전에 나우 자전거를 고쳐놓으란다, 나가 보니 안장 너트 하나가 도망가고 없다. 멍키스패너하나 챙겨 나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로 반사판 너트 빼서 안장 볼트에 끼운다. 짝 잃은 반사판 볼트가 불쌍하다. 빼서 버린다. 반사판은 찍찍이로 고정시킨다. 임시방편이다. 임시가 상시가 될 꺼다. 다시 올라오니 이번에는 나우도 깨어있다.

따위 : 나우야 엄마 아빠 병원가서 ‘기떡이’ 낳아가지고 올께.
나우 : 응. 헤헤

예상 밖으로 순순히 떨어진다. 이상하다. 광복절이라 그런가

강변북로는 한산하다. 차에다 태극기 달고 달리는 애국자도 있다. 부끄럽다. 나도 애국을 해야 하는 건데. 이게 다 ‘기떡이’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애 낳으러 가는 건데 비상등이라도 깜빡이며 폼나게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비상등 안켜고 후줄근하게 달려서 병원에 도착한다.

병원에 도착하면서부터 보호자는 심심하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다가 이거 해라 하면 이거 하고 저거 해라 하면 저거 하면 된다. 그래서 기다린다. 심심하다. 아내는 지금쯤 불안, 초초, 긴장 일 텐데 나는 한가하다. 철없는 남편 만나서 고생이 많다.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웬 아저씨가 ‘셋째 낳으러 오신 분이죠?’ 한다. 아저씨가 아니고 의사다. 따위가 셋째 나러 왔다고 벌써 병원에 소문이 쫘악 돌았나 보다.

간호사가 오더니 수술동의서 작성하란다.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한다. 어쩌라구? 이제와서 동의서 읽어보고 문구 따지다가 그러면 딴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안그런가?

조금 있다가 간호사가 또 쪼르르 와서는 무슨 마취를 할꺼냐구 묻는다. 수술 끝나고 덜 아픈 거는 15만원 더 내야 한단다. 그럼 그걸로 하지뭐. 돈 내고 오란다. 에이 그냥 평범한 걸 루 할걸!

돈 내러 가니까 원무 담당 직원이 열라 바쁘다. 외환딜러처럼 전화기를 2개들고 통화를 하지 않나. 키보드들 열라 두들겨 대질 않나, 전화교환원 노릇을 하질 않나. 다재다능하다. 스카우트해야겠다. 암튼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돈 내는데 그래서 20분 걸렸다. 아무려나 돈 내고 있는데 수술실에서 빨리 오란다. 나도 가고 싶다고, 근디 저 다재다능한 쟤가 열라 바쁜척 돈을 안받아서 그런거 아냐, 투덜이 따위 투덜거리며, 가니까 나한테 수술용 초록색 까운 입히고, 모자 씌우고, 마스크 씌우고 따라 오란다. 쫄래쫄래 따라간다. 가다가 손 씻으란다. 빠악빠악 씻는다. 손 씻으니까 들어 오란다. 쭈볏쭈볏 들어간다. 들어가니까 수술은 이미 진행중이다.

수술대 위에 큰 대자로 묶인(정말이다 내 아내가 묶여 있다. 어쭈구리 이놈들 봐라 싶다. 니들이 뭔데 내 아내를 묶어? 꼬와도 꾹 참는다.) 아내 머리 맡에 쪼그리고 앉으란다.

마취과 의사는 “쓰레빠” 신은 발 까불까불 거리면서 계기판를 보고 있다. 저 기계의 이름이 무슨 스코프더라. 아내의 혈압과 맥박이 그래프와 함께 그려진다. 얼핏보니 뭐 정상이다.

그 와중에 지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썩션” 또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야 나온다” 하더니 “으앙”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험한 세상에 뭐 볼게 있다고 날 오라고 했느냐는 반항의 울음 소리같다.

애가 나오니까 “아빠 이리오세요. 손가락 발가락 다 다섯개씩이죠. 척추 똑바르죠. 보세요. 항문도 있죠, 몸무게는 3.3Kg이구요. 보시다 시피 아들이구요. 그렇게 가만히 서 계시지 말고. 뭐라고 말씀을 좀 하셔야죠, 아이가 아빠 목소리 듣게. 지금부터 탯줄 자를꺼예요. 요기 자르세요, 네 잘하셨어요, 아이와 산모 손목에 채울 name tag에여, 확인해 보세요, 지금부터 병실에 올라갈 거구요. 산모는 회복실에서 한 3시간 있을 거구여”. 아 거 되게 말 많드만.

병실로 올라가면서 간호사가 아빠가 안고 올라가는 거란다. 이 병원은 좀 유난스럽다. 안는다. 가볍다. 세월이 가면 무거워 질 것이다.

‘산다는 건 갈수록 무거워 지는 거야 임마. 니가 지금은 뭘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면 알게 될거야. 니 위로 깡패같은 누나에다가 말썽 피우는 형이 있다구, 어때 상황파악이 좀 되냐? 아무튼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아이 신생아실에 ‘입방식’치루고, 전화질 시작이다.

“네 장모님 전데요….”

“어머니세요…”

“어 누나 난데…”

으 또 고생 시작이다.

(나중에 생각나면 계속…)

2002년 8월 20일 (언이 태어나고 5일 후)

p.s.
뒤지는 김에 더 뒤져보자, 했더니 이런 것도 있네요. 보아하니 예전에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던 거군요. 원래 제가 재탕 삼탕은 잘 안하는 스따일 이기는 하지만 뭐 애 셋 블로그에 막둥이 출생기 있는 게 구색도 갖추고 좋을 듯하여 올립니다. 이상타. 이 밤에 뭔 말이 그렇게 많지. 비 맞은 중모양.

응가하는 물고기

<니모를 찾아서> 보셨습니까? 전 아이들 때문에 거짓말 좀 보태서 한 백 번은 본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지요. (이하 스포일러입니다.)

‘니모’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스쿠바 다이빙을 즐기는 치과의사에게 잡혀갑니다. 눈 앞에서 아들이 잡혀가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아빠는 망연자실해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찾아나섭니다. 그 길?에서 아빠 물고기는 심한 건망증 증세가 있는 ‘도리’라는 이름의 파란 ‘아줌마 물고기’를 만나게 되고 둘은 이후 함께 행동을 합니다. 일종의 ‘물고기 버디’ 무비인 셈이죠.

그런데 ‘도리’는 언어적 재능이 뛰어난 물고기입니다. 알파벳을 읽을 줄 알고, ‘고래말’을 할 줄도 압니다. 당연히 이 재능은 아빠 물고기가 ‘니모’를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한편, 시드니의 한 치과병원의 수족관에 잡혀온 니모는 ‘바다 출신’이라는 것으로 일단 좀 먹고 들어갑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출신지가 고작 다른 수족관이거나 쇼핑몰이거나 인터넷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역시 ‘바다 출신’의 대장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 갈 데 없는 물고기 클럽’을 조직하고 서로 위하며 살아갑니다.

‘니모’는 곧 ‘달라’라는 이름의 치과의사의 조카에게 선물로 주어질 운명입니다. 문제는 이 조카가 수족관 물고기들에게는 악명높은 아이라는 겁니다. ‘흔들어서 물고기를 죽인 아이’라는 것이죠. 이 아이는 치과치료 중으로 ‘보철’을 한 모습이 물고기들 눈에는 정말 극악무도하게 보입니다. 아무튼 니모에게는, 그리고 수족관의 물고기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리고 이 치과병원에는 펠리칸이 드나듭니다. 그는 치과의사의 치료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나름대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펠리칸입니다. 그도 영화의 나레이티브 전개상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줄거리 얘기는 이쯤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니모를 찾아서’를 자꾸 보다보면 대사들이 감칠맛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__지금부터 최대한 더럽게 행동해. 생각도 더럽게 하고.
__이름만 광대지. 끼가 없어.
__입만 살았지. 움직이지들을 않어.
__이 얄미운 정수기야.
__아무 일 없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__왜 안무섭겠어. 상언데…
__광대물고긴데 진짜 안 웃겨.

아이들은 이제 영화의 대사를 전부 외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언’이가 자꾸만 틀어달라고 해서 나머지 식구들도 어쩔 수 없이 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p.s.
편집자 모드에서 Entry를 뒤져보니 ‘응가하는 물고기’가 2004년 2월 29일 날 draft로 되어있군요. draft 상태이니 쓰다 만 것일테고 그때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저 따위로 제목을 붙였을텐데 잘 기억이 안나는군요. 나중에 생각나면 생각나겠지요.

부끄러운 커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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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서가 깜빡이는 동안만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유서를 훔쳐본 그날 나는 다 자라버렸다 그날 이후 내 커서는 어두운 곳만 찾아다녔다 메디케이션 타임! 메디케이션 타임!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벌써 2년 동안이나 하얀 알약을 삼켰다 어느 게시판에 약 먹을 시간이라고 썼다가 어디 아프신 거 같은 데 가서 약이나 드시죠, 하며 빈정거리던 새끼 때문에 그 글을 지워버렸다 이제 이별 같은 건 무섭지 않으니 만나지도 말아야겠다 내 불안한 커서는 모니터 속에서 늙은 소처럼 눈을 꿈뻑인다 오늘 밤 너는 어떤 입력도 기다리지 말거라

잘 찍은 사진 한 장

글과 사진 윤광준, <<잘 찍은 사진 한 장: 윤광준의 사진 이야기>>, 웅진닷컴, 2002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뭐가 어떻다구? 사람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기라도 한다구? 아님 어느 날 지구를 역회전시키기라도 한다구? 성격상 시비 먼저 걸었다. 시비 아직 안 끝났다. 포에틱하게 제목 짓느라 누군지 고생깨나 했겠다. 이 책의 컨셉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오히려 부제다. 윤광준의 사진이야기. 윤광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한 책이다.

그런데 윤광준은 누구인가? 책날개의 저자 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오디로 평론가로 잘 알려진 윤광준의 본업은 사진작가이다.” 이런, 이런, 낭패다. 오디오 평론가로 잘 알려졌다는 데 나는 금시초문이니, 이 사람이 덜 알려졌거나 내가 시대에 뒤쳐진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다. 오디오 분야는 내가 낙후된 분야이니 후자가 맞겠다. 됐다. 이쯤하자. 괜히 제목 가지고 시비를 거는 이유는 다른 부분은 시비 걸 게 별로 없어서다.

성실하게 썼다. 그만큼 이것저것 내용이 알차다. 책 중간 중간에 실린 사진도 좋다. 하긴 좋아야지 名色이 사진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로 사진가인데 그게 안 좋으면 쓰겠냐?

다른 얘기는 관두고 여기서는 필카냐 디카냐 맞짱을 함 떠보자. “필름은 사진의 오리진”이라는 챕터의 한 구절을 보자. 그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해서 “커다란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효율성과 편리를 선택한 대가치고는 그 후유증이 너무 컸다. 인쇄물의 결과는 고객의 불만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작업 의뢰 중단이란 현실적 손해로 다가왔다. 굵직한 고객 몇몇은 벌써 다른 사진가를 물색하고 있었다.” 프로 사진가에게 이것만큼 치명적인 읽은 없다. 한마디로 디지털 카메라 한번 섣불리 썼다가 앗, 뜨거라 싶게 당한 거다. 필카의 한판승! 일동 박수! 짝! 짝! 짝!

물론, 이 책이 나온게 2002년이고 그러니 그가 사용했었다는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이 요즘 것 보다는 한참이나 성능이 뒤졌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향상된 성능의 디지털 카메라는 커다란 힘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내심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에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나의 태도는 단호하다.”고.

그런데 최근에 보니 이 분이 <<윤광준의 아름다운 디카세상 : 디카로 잘 찍은 사진 한 장>>라는 책을 새로 냈다. line extension이다. 전편의 메인타이틀 이었던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라는 제목이 이번에는 부제로 갔다. 앞에다 혹을 하나 달고. 하여 ‘디카로 잘 찍은 한 장’이다.

그가 ‘디카의 유혹’에 넘어갔다기보다는 ‘브랜드 확장의 유혹’에 넘어갔다, 고 얘기하면 지나친 혹평일까? 모르겠다. 서점에 가서 그의 새 책을 슬렁슬렁 넘겨보면서 중간중간에 게재된 사진을 보았다. 실망스러웠다. 디카로 찍은 것이리라. 속편은 사지 않을 것이다. 해서 나는, 아직은 필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근데 솔직히 필름 현상하고 스캔받고 이러는 거 ‘느무느무’ 귀찮다. 그냥 퀄러티 조금 양보하고 편하게 찍고 싶기도 하다. 그러니 누가 속편에 돌을 던지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