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차라리 기타나 치련다.

하지만 논문의 언어는 메타 언어, 말하자면 다른 언어들에 대해서 말하는 언어이다. 어떤 정신분석가가 정신병자에 대해 설명할 때 정신병자들처럼 표현할 수는 없다. 소위 정신병자들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여러분은 ─ 합리적으로 ─ 그 정신병자들은 유일하게 그런 방식으로만 자신을 표현하다고 확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여러분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즉 논문을 쓰지 않고, 여러분의 단절된 욕구를 표명하기 위해 졸업을 거부하고 차라리 기타를 치고 있거나, 아니면 논문을 쓰는 일이다. 이 후자의 경우라면, 여러분은 왜 정신병자의 언어는 <미치광이의> 언어가 아닌가를 모든 사람에게 설명해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비평적 메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 “움베르트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中에서

마음 어디 갔나

미안하네. 내 마음은 엔진오일 교환하러 정비소에 갔네. 그런데 공장장 말이 엔진오일 교환 정도로는 안 된다더군. 이왕 그렇게 된 거 마음의 타이어도 갈아달라 했네. 혼자 걷는 길 미끄러지지 않게. 빈 마음에 부동액도 넣어달라 했네. 겹겹이 추운 날 얼어터지지 않게. 아, 와이퍼도 갈아 달라 했네. 눈물에 흐려지지 않게 말일세. 공장장 말이 그 밖에도 이것저것 손볼게 아주 많다더군. 공장장 말이 시간깨나 걸린다더군. 그래서 그러라고 했네. 그리고서 이 모양일세. 마음 어디 갔나. 나 두고 어디 갔나.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원미동 사람들>>, 살림, 2004(3판 2쇄)

모두 11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연작 소설집이다. 좋은 책이다. 이제야 읽었다. 내가 읽은 것은 3판이다. 1판 해설 “원미동 ─ 작고도 큰 세계” (홍정선), 2판 해설 “밥의 진실과 노래의 진실” (황도경)이 실려 있다. 3판에는 발문 “내 마음의 거리, 원미동” (김탁환)이 있다. 읽어보지 않았다. 작가 후기는 1987년 10월자로 하나만 쓰여있다. 문지사 여러분께 감사한다니 초판은 문지사에서 나온 모양이다. 꾸준히 팔리는 모양이다.

<멀고 아름다운 동네> (한국문학 86.3)
원미동은 ‘멀 원’ 자에 ‘아름다울 미’ 자를 쓴다. 노모와 아이와 임신한 아내를 둔 가장이 한 겨울에 짐을 싸서 멀고 아름다운 동네로 이사가는 모습을 찬찬히 묘사했다. 짐칸에 실려가는 부부의 모습이 싸하다.

<불씨> (문학사상 86.4)
진만이는 개구장이다. 슈퍼맨 놀이 한다고 담장에서 뛰어내리다 이웃집 장독을 깨기도 하고 팔도 부러지고 그런다. 진만이 아빠는 실업자다. 아니다. 외판원이다. 그런데 도무지 말문이 터지질 않는 거다. 그래서 물건을 팔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말문이 트이게 할 목적으로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메인다. 드디어는 고속터미날에서 그렇게도 찾던 ‘스파링 파트너’를 만난다. 한번 말문이 트이자 술술 나온다. 그런데…

<마지막 땅> (동서문학 86.7)
강노인에게 원미동에 땅이 조금 있다. 그땅에서 식구들 먹을 푸성귀나 기른다. 똥을 퍼다가 거름을 뿌린다. 동네사람들, 여름이면 냄새 난다고 똥파리 꼬인다고 난리다. 사실 냄새도 냄새지만 동네에 강노인 밭이 있어서 집값이 안 오른다고 불만이다. 반상회를 열어 강노인이 농사 못짓게 할 대책을 마련한다. 자식놈들 다 소용 없다. 맨날 그 알량한 땅팔아 돈좀 달라고 난리다.

<원미동 시인> (한국문학 86.8)
오래 전에 TV에서 극화된 걸 본 적이 있다. 소설에는 김정환, 이하석, 황지우의 시가 인용되어 있다.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구나……”(원주여자 ─ 아름다움에 대하여, 김정환)
“열입곱 개의, 또는 스물한 개의 단추들이 그녀를 가두었다.”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西風 앞에서, 황지우)

TV에서는 원미동 시인이 황지우의 “여보, 지금 노량진 水産市場에 가서/ 죽어가는 게의 꿈벅거리는 눈을 보고 올래?”(<<나는 너다>>, 109)를 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다 나았어요?라는 제목으로 따위넷에 이미 인용한 바 있다.

<한마리의 나그네 쥐> (문학사상 86.8)
‘그 사내’가 어느 날 원미산으로 아예 들어가 버렸다. 그의 실종을 두고 동네에서 말들이 많다. 그 사내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 (세계의 문학 86년 겨울호)
너희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아느냐?
너희가, 겨울에는 연탄 배달하고 구들도 놓고 수도고 고치고 안 하는 일 못하는 일이 없는 착실하고 성실하고 양심적인 임씨가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으로 가야한다, 하는 이유를 아느냐?
너희가, 시인 유하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한다, 하는 이유를 하느냐?

<방울새> (문예중앙, 85년 가을호)
제일 먼저 발표된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연작으로 쓰여진 것은 아닌데 이 소설집에 끼워넣었다 한다. 감옥에 있는 남편을 둔 아내가 역시나 무슨 사연으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자와 동물원에 간 이야기다.

<찻집 여자> (매운 바람 부는 날, 1987)
어쩌다가 여기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까지 흘러들어 와서 찻집을 차린 여자가 있다. 그 여자를 보는 동네 아낙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어느 날 찻집 여자가 행복사진관에 와 증명사진을 청한다. 사진사 엄씨는 뷰파인더로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그러느라 시간이 제법 걸린다. 엄씨가 사진을 다 찍자 여자가 말한다. “사진 찍는 일도 쉽지는 않군요.” 한때는 예술 사진을 찍떤 엄씨였다. 이제는 증명사진이나 찍어주고 유치원 전속 사진사 노릇을 하기는 하지만. 드디어는 엄씨가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첫만남부터 “사진사라는 직업의 애환을 속속들이 알아버렸다는 투로 말하는” 찻집 여자와 행복사진관 엄씨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 사랑 위태위태 하다. 아니나 다를까. 엄씨의 아내가 그걸 알고 찻집 여자를 찾아가 개박살 내버렸다. 그날 저녁 둘이는 부천역에서 만났으나 딱히 갈 곳이 없다. 날은 추운데 인천 쪽으로 가봐야 그렇고 서울 쪽으로 가봐야 그렇다. 둘이는 꾸역꾸역 비빔밥을 먹고 둘이는 다시 찻집 여자의 찻집에 딸린 상자곽같은 골방으로 숨어든다.

“까마귀는 어디에 있어도 까마귀예요.”
“약국에 갔다 올게요.”
“아녜요. 먹던 약이 다 떨어졌어요.”
“여기서 헤어져요.”
“큰길로 가세요. 나는 이쪽으로 가겠어요.”
“불 켜지 말아요.”
“이리 들어와요. 한결 나은걸.”
“늦었을 거예요. 어서 돌아가세요.”
“다신, 이곳에 얼씬도 마세요.”
찻집 여자의 말들이다.

<일용할 양식> (우리 시대의 문학 6집, 1987)
‘김포쌀상회’의 경호 아버지가 상호를 ‘김포슈퍼’로 바꾼다. 쌀과 연탄만을 취급하다가 확장을 한 것이다. 기존의 ‘형제슈퍼’ 김반장, 열 받았다. 김반장도 연탄도 팔고 쌀도 판다. 한 판 붙었다. 가격할인경쟁. 끼워팔기경쟁. 난리다. 아줌마들만 신났다. 그 와중에 눈치없이 ‘싱싱청과물’이 문을 열었다. 찻집 여자가 쫓겨난 자리에. 뭐야? 저건 또 뭐야? 경호 아버지와 김반장이 카르텔을 맺어 싱싱청과물을 쫓아낸다. 싱싱청과물이 쫓겨난 자리에 새점포가 들어서는데 이번에는 ‘전파상’이다. 그건 시내 엄마의 업종이다.

<지하 생활자> (문학사상 87.8)
세를 얻었는데 화장실이 없다. 해서 방값이 싸다. 해서 얻은거다. 해서 세입자는 주인집 화장실을 써야하는데 주인 여자는 ‘지하생활자’에게 현관 열쇠를 주자니 영 께름칙하다. 주인집 여자는 열쇠는 주지 않고 자기는 언제든지 집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문을 열어줄테니 언제든지 와서 볼 일을 보라며 걱정말라한다. 해서 계약했다. 싸니까. 그런데 똥 싸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똥 싸고 올 때 마음 다르더라고 주인집 여자가 문을 안 열어준다. 허걱. 똥 마려운데 문을 안 열어준다. 급해 죽겠는데 아무리 두드려도 주인집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지가 무슨 천국의 문이라고 열리지 않는다. 하여 똥마려운 시간을 옮겨보려고, 가능하면 직장에서 해결하려고 별 짓 다해보는데 그게 내 뜻대로 안된다. 내 맘대로 안된다. 하여 지하생활자는 처절하다. 똥 마려운데 똥을 쌀 곳이 없어 처절하다. “결국은 새벽에 잠이 깨어 낑낑거리며 똥눌 데를 찾아다녀야 했다. 낑낑거리며, 라는 스스로의 표현 앞에서 그는 문득 기가 막혔다. 개처럼 낑낑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없다. 바지에 싸기 싫으면 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밖에 나가서 싼다. 주차해 놓은 차 뒤에서. 개처럼.

<한계령> (한국문학 87.8)
작가에게 어느 날 소꿉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전주 기차길 옆에서 함께 자란 만두집 딸, 은자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하던 은자는 마침 부천역에 있는 나이트 클럽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중이다. 얼굴 한 번 보자구 나오란다. 나가마, 했다. 그런데 작가는 쉽게 은자를 만나러 나가지 못한다. 왜일까? 글쎄다.
작가의 고향에는 큰 오빠가 산다. 어려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일군 사람이다. 큰 오빠가 요즘 크게 상심해 있다. 고향집은 팔렸다. 곧 여관이 될 것이다. 주변에 여관이 그득하므로.
작가는 은자가 공연하는 마지막 날 은자를 찾아간다. 마침 은자일 것으로 짐작되는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한계령이다.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작가는 그냥 돌아온다. 사흘 후, 은자에게서 전화가 온다. 은자 화났다.
“전라도말로 해서 너 참 싸가지 없더라. 진짜 안 와버리대?”
그러나 작가는 “‘한계령’을 부른 가수가 바러 너 아니었느냐는 물음도 하지 않”는다.
은자는 작가에게 “고향의 표지판”이다. 고향, 나이 먹으면 심사가 복잡한 말이다.

나는 ‘큰 오빠’를 읽으며 신경숙의 <<외딴 방>>에 나오는 ‘오빠’를 생각했다. 방위 받으면서 가발 쓰고 과외해서 돈 벌고 공무원 시험보고 공무원 되고 시골에서 동생들 불러 올려 공부시키던. 큰 오빠들이란!

날림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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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나무조각, 본드, 실

공구:
바이스, 톱, 드릴, 뾰족한 거

작업과정:
바이스에 나무조각으로 물리고
쇠톱으로 자르고
드릴로 구멍 뚫고
목공용 본드로 붙이고
구멍에 실을 꿰어 매달고……

감상 포인트:
나는 애가 셋이라 뭘 만들어도 세 개를 만들어야 하네.
안그러면 싸우네. 안그러면 우네. 안그러면 전쟁이네.
해서 날림 그네도 세 개 만들었네. 그러나 사실 그네는 약과네.
나우가 미끄럼틀 만들어 달라며 그려 놓은 설계도를 보면
한숨만 나오네. 주말이 무섭네. 우우. 나는 애 셋 아빠네.

p.s.
평소에 쓰던 모니터가 순서 밖으로(out of order)나가버리는 바람에
사진의 상태를 잘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