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 일도 없었어. 그저 창밖에 눈발이 조금 보였을 뿐. 요즘은 센치해지지도 않지. 난 그저 무감을 원했지. 그리고 무감해졌지.

빙등축제 허탕치고

빙등축제 허탕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시 한 편을 읽다.

정 물(이성복)

꽃들, 어두워가는 창가로 지워지는
비명 같은 꽃들
흙이 게워낸 한바탕 초록 잎새 위로
추억처럼 덤벼오는 한 무리 붉은 고요
잔잔한 물 위의 소금쟁이처럼
물너울을 일으키는 꽃들
하나의 물너울이 다른 물너울로 건너갈 동안
이마를 떨구고 풍화하는 꽃들
오, 해 떨어지도록 떠나지 않는 옅은 어질머리

똥배의 똥배를 위한 똥배에 의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고전적인 방법은 이렇다.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집어 넣는다.
3. 냉장고 문을 닫는다.

밤새 누군가가 내 뱃가죽을 열고,
돌덩어리들을 쑤셔넣고,
뱃가죽을 꿰매고 갔나보다.

여섯 마리 어린 양들을 잡아 먹고는 늘어지게 한 잠 자다가
엄마 양에게 잘 못걸려 똑같은 일을 당한 어느 멍청한 늑대처럼
배가 무겁다. 두런거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와락 잠이 깬 아침,
배가 빵빵하다.
똥배의 똥배를 위한 똥배에 의한…
간단하다. 추하다.

누구든지 걸리기만 해봐라

vise.jpg
누구든지 걸기기만 걸리면
아주 꽉 물어 버릴테다.
꽉 물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테다.

p.s.
예전에 저걸로 울 ‘딴따라’ 외삼춘이 이 따시만한 하모니카를 만들었었다.
저걸로 금속판을 꽉 물어버린 다음에 줄 질을 하셨드랬다.
어찌어찌하여 부속품이 망가져 못쓰게 되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멀쩡해져 있었다.
아버지가 영등포의 무슨 거리에 가셔서 손을 보아 오셨다고 한다.
옳다구나 하여, ‘아버지 이건 제겁니다’하고 냉큼 가져와 메모꽂이로나 쓰고 있다.

나는 저 녹슨 질감하며, 세월의 흔적하며, 내 아버지가 기름칠하시던 모습하며
저 바이스에 얽힌 기억이 삼삼하다. 허니
탐내지 마시라. 아무도 안 준다. 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