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가? 나를 아는 사람 중에 이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팔팔하던 시절의 내 방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 시절의 기록으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거다. 역시, 지난 시절의 노트북에 짱박혀 있었다. 벌써 그 시절이 그리운 나이가 되어 가끔 나혼자라도 파먹기 위해 여기에 옮겨 놓는다.
냄새에 민감해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냄새에 민감해졌다. 버스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사내에게서 자꾸만 갈비집냄새가 났다. 역겨웠다. 그 냄새를 역겨워하는 나 자신도 역겨웠다. ‘골을 뽀개고 빛을 쪼이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지금 여기가 아닌 세계를 향한 임계지점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고 쓰면 거짓일 것이다. 그럼 이것은 무엇인가?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 일도 없었어. 그저 창밖에 눈발이 조금 보였을 뿐. 요즘은 센치해지지도 않지. 난 그저 무감을 원했지. 그리고 무감해졌지.
짜가 눈썰매
2004년 1월 11일 강원도 평창에서
빙등축제 허탕치고
빙등축제 허탕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시 한 편을 읽다.
정 물(이성복)
꽃들, 어두워가는 창가로 지워지는
비명 같은 꽃들
흙이 게워낸 한바탕 초록 잎새 위로
추억처럼 덤벼오는 한 무리 붉은 고요
잔잔한 물 위의 소금쟁이처럼
물너울을 일으키는 꽃들
하나의 물너울이 다른 물너울로 건너갈 동안
이마를 떨구고 풍화하는 꽃들
오, 해 떨어지도록 떠나지 않는 옅은 어질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