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은 존재론적인 질문이다. 먹고 사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오늘 나는 하마터면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고 물을 뻔했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 속에서 나는 명명하기 힘든 어떤 비실재감에 시달렸다. 가령, 옆자리에서 앉아서 핸드폰 너머의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자꾸 혼잣말을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거나, 환승통로를 걷던 사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할 때 저쪽 플랫폼에 기차가 곧 도차하나보다 하는 생각보다는 어디서 무슨 일이 생겼나 사람들이 왜 뛰지 하는 생각이 들거나, 혹은 방향감각이 일순 사라져 교대 방향 플랫폼에 앉아 교대는 어느 쪽으로 가느냐고 묻는 어느 할머니의 질문에 좌우를 두리번거리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자꾸만 현전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책 속에 의식을 묻었다. 오늘 따라 책 속의 이야기들도 비실재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동차에 치인 개에 물렸던 여자가 자신의 핸드백을 날치기 하려는 강도의 팔뚝을 개처럼 물어뜯었던 이야기,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고양이의 자궁을 적출하고 개구리를 낳고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그랬다. < 매그놀리아>의 하늘에서 ‘개구리 오는(혹은 내리는)’ 장면이 생각났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개구리들이 파열하는 장면이 텍스트 위에 오버랩 되었다. 끔찍했다.
그 끔찍한 시간을 온전히 견디고 지상으로 무사히 걸어 올라오며 나는 적잖이 안도했다. 이 황량하다 못해 폐허에 가까운 하늘빛이 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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