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의 컴플렉스

[…]그리고, 좀더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11시의 컴플렉스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오전 11시의 아파트 거실에 퍼지는 커피 향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 널고, 그러고 나면 11시 무렵이지 않겠는가. 그 다음엔 뭘 할까.[…]

─ 박금산, ‘통’, 문예중앙 104(2003 겨울)

엄마

불행하게도 ─ 하하, 불행하게도라고? ─, 내가 내 생애에 처음으로 발음한 완전한 단어는 ‘열쇠’라든가 ‘꿈’이라든가 하는, 문학적 재능의 징후를 보여주는 말이 아니라, 그저 ‘엄마’였다.

─이인성, <한없이 낮은 숨결>, 문학과지성사, p59

2. 다르면 웃긴다

여기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가난한 영화감독과 남편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삵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석봉 모(母) 같은 아내가 있다. 이들에게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온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선배다. 아내는 조촐한 술상을 준비하고 이들은 오랜 만에 이야기꽃을 피운다. 결국 화제는 영화로 옮겨 온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찍는 남편의 성공가능성으로 옮겨 오고, 생활고로 옮겨 온다. 남편이 말한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도 안 되면 상업영화를 할 거니깐.”
다큐멘터리 영화하던 사람이 상업영화를 하겠다고 나오는 것도 대단히 많이 양보한 것이다. 물론 상업영화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려나 남편은 이 말도 큰 맘 먹고 한 거다. 이때 아내의 반응은 이렇다.
“상업영화는 무슨…, 농업영화면 또 몰라도…….”
아내의 이 말에 다큐멘터리 찍는 남편과 그들을 찾아온 손님이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

자, 우리들에게 ‘상업영화’라는 말의 대척점에 서 있는 말은 ‘예술영화’나 ‘작가주의영화’뭐 이런 말들이다. 우리들에게는 지금까지 ‘상업영화’의 반대말로 ‘농업영화’를 떠올려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다.
이렇게 기존의 것,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면 웃긴다.
우리의 두뇌는 어떤 상황이나 말이 주어졌을 때 그것과 연관되는 그 다음에 일어날 것에 대해서 기대한다. 이 기대는 대개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다. 아니면 경험 의존적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웃기고자 한다면 상대방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사전 작업을 한 다음에,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면 된다.
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기대하고 있는 것과 다른 걸 말하거나, 다른 걸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걸 말하거나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익숙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사물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의식이 자유로워야 하고, 생각이 자유로워야 한다. 고착되지 않은, 판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이 필요하다.

그러니 생각을 다르게 하라. 표현을 다르게 하라. 행동을 다르게 하라.
발 냄새난다는 표현 대신에 ‘양말 먹었냐’는 표현을 최초로 생각해 낸 사람을 나는 존경한다.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는 표현 대신에 ‘쥐 잡아 먹었느냐’는 표현을 최초로 생각해 낸 사람도 나는 존경한다.

남을 웃기는 방법

바야흐로 웃기지 못하면 배고픈 세상이다. 하여 ‘나의 배고픈 이웃’들이 다른 사람을 웃기지 못해서 배고프지 않도록 ‘남을 웃기는 방법’에 대해서 한 40회에 걸쳐 연재를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