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가 알에서 천천히 빠져 나옵니다.
바늘 같은 입도 작은 낫 같은 앞다리도 제대로 생겼습니다.
아빠물자라의 등 위에서 듬뿍 공기를 마시고 흰 몸을 폅니다.
저것 보세요. 넓적한 모양의 애벌레입니다.
아빠물자라가 물 속으로 살짝들어가 애벌레를 물에 띄웁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살아갑니다.
밤입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나름대로 목소리 연기까지 합니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합니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읽기를 멈추면 아이는 ‘땡깡’을 부립니다. 아마도 책읽는 소리를 무슨 사운드 이펙트나 제 놀이의 배경음악 쯤으로 여기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여어여 읽어 마지막 페이지에 닿아야 책 읽어주기의 괴로움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계속 읽습니다. 잠시 딴 생각을 했나봅니다. 눈이 텍스트를 쫓아가고 입이 한음절 한음절 텍스트를 발음하지만 나는 내가 소리내어 읽는 문장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불성실한 아빠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문장을 만납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살아갑니다’라는 문장입니다. 나는 잠시 아득해집니다. 나는 도리질을 치며 서둘러 책읽어주기를 마칩니다. 제 난데 없는 도리질에 아이가 묻습니다. “아빠, 왜 그래?” “응, 아냐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