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쯤이야.
이쯤에서 비를 한 번 뿌리라구.
그리고 똑똑히 봐.
네가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ER

Mar27_2004_wound.jpg

애 셋을 데리고 식당엘 가면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봅니다. 딱 두 종류의 시선이죠. 저집 엄청 부자인가보다 혹은 참 안됐다! 웬만한 시선은 그러려니 합니다. 한 번은 뒷 테이블에서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하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제가 심기가 불편해져서 아주 대놓고 쏘아보아준 적도 있습니다. “뭘보냐? 사람 처음 보냐? 니가 나 애 셋 낳는데 정액 한 방울 보태준 거 있냐?” 뭐 이런 식이었죠.

저날은 최악이었습니다. 최선의 날도 물론 있었어요. 연세 좀 넉넉히 자신 노인네 부부가 자기들 드시려고 주문한 파전 한 판을 반으로 뚝 잘라 넘겨주시더군요. 애들이 귀엽다고 말입니다. 고맙지요. 없는 살림에 파전 반 판! 그게 어딥니까?

아무려나 어제 저녁에도 외식을 했습니다. 저희 패밀리 외식 메뉴는 딱 두 종류입니다. 칼국수 혹은 뼈다귀해장국! 오늘 메뉴는 뼈다귀해장국이었습니다. ‘원당헌’이라고 잘 하는 집 있습지요. 뼈다귀 싹싹 발라 맛있게 잘 먹고, 아이들은 또 자판기에서 코코아 한 잔씩 뽑아 주고, 집에 와서 나우와 기엽이는 또 컴퓨터 하겠다고 달겨들어 컴퓨터 켜주고, 기언이는 졸려하여 재웠습니다. 물론 아내가 재웠습니다.

저는 귀찮기는 하지만 싸나이 뜻한 바가 있어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한 바퀴에 700m 씩이나 되는 트랙을 무려 다섯 바퀴나 돌았습니다.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요. 뛰면, 아 이제 내가 여기서 쓰러지는구나, 하는 한계지점에 곧 도착하니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걷지요. 걸으면, 기왕 하는 건데 인텐시브하게 해야 ‘뜻’이 이루어지지 않겠어, 하는 심정에 다시 뛰지요.

네 바퀴 반을 그렇게 돌고 한 지점에 멈추어서서 마무리 운동에 들어갑니다. 팔굽혀펴기 수십회, 양팔 크게 벌려 앞으로 회전시키기 수십회, 양팔 크게 벌려 뒤로 회전시키기 수십회, 중에서 10회 쯤 했는데…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 누가 술 사준다고 나오라고 하는 구나, 하고 냉큼 받았습니다. 웬 걸. 아내였습니다.

__지금 빨리 집에 와 줄 수 있어?
__엉, 왜?
__나 턱 밑에가 찢어졌어.
__뭐? 알았어. 당장 갈게.

하고는 집에 까지 냅다 뛰어왔습니다. 뛰면서 어느 놈 때문일까, 많이 다쳤나, 응급실엘 가야하나, 애들만 집에 남겨 둘 수도 없고 노인네를 오시라고 할까 고모에게 부탁할까,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상처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진과 같습니다. 아 오해마십시요. 저건 원래는 아내 보여주려고 찍은 겁니다. 여기 올리려고 찍은 거 아닙니다. 아무튼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을 부탁하고 부랴부랴 병원 응급실엘 갔습니다.

불철주야 격무에 시달리시는 병원응급실 관계자 분들 피로를 잠시 잊으시라고 너스레를 좀 떨었습니다. “저기, 수술 하려면 전신마취해야하나요?” “우리 부부가 원래는 부부싸움 같은 거 잘 안하는데…” “저, 제 아내가 곧 탤런트 될거거든요. 즉 얼굴로 먹고 살아야하니 흉터 안 남게 해주세요.” “떨지마. 내가 옆에서 손 꼭잡고 있을게”

무려 7바늘 꿰맸습니다.

응급실의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이 묻더군요. 어쩌다가 다쳤느냐고 말입니다. 어쩌다 다쳤을까요? 저도 그게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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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아 글쎄, 저희 싸모님께서 몸짱 되시겠다고 수십년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AB 슬라이더를 하시다가 그만 슬라이딩을 하신 거 였습니다.

지금 큰 수술 받으시느라 고생하신 싸모님 주무십니다. 애들도 곤히 잠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만 좋아한다.

Mar20_2004_morning.jpg

아침이다. 나는 한가하다. 나는 토스트 먹으며 신문보고 커피 마시며 신문보다가 또 신문지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한 마디로 나는 나 하나만 챙기면 된다. 이만큼 컸으니 나는 혼자서도 잘 한다.

아침이다. 아내는 바쁘다. 나 토스트 만들어 줘여지, 나 커피 타줘야지, 애들 깨워야지, 애들 빵에다 꿀 발라 먹겠다면 빵에다가 꿀 발라 줘야지, 애들 빵에다 쨈 발라 먹겠다면 쨈 발라줘야지, 애들 옷 입혀 주어야지, 나우 머리 묶겠다면 머리 묶어 줘야지, 나무 머리 따겠다면 머리 따줘야지, 엽이 옷입혀 줘야지, 엽이 양말 신겨줘야지, 애들 가방 싸주어야지, 애들 유치원에 데려다 줘야지,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내는 바쁘다.

평소에 나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짤없다. 엄마는 안되는 것도 금방 된다. 이런 식이다.

__엄마, 나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
__안 돼.
__으힝. (아이들 삐진다.)
__그럼, 딱 하나만 먹어.
__네. (아이들 아이스크림 맛있게 먹는다.)

엄마가 “안 돼”에서 “딱 하나만 먹어”라고 말하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30초면 충분하다. 그러니 아이들은 엄마만 찾는다. 그러니 엄마는 피곤하다. 나는 짤없다.

아침마다, 아이들은 늑장이다. 그 중 TV도 한 몫한다. 이 와중에 막내는 막내대로 설쳐댄다. 오줌 싸고, VTR 틀어달라하고 아주 가관이다. 오늘 아침. 아내가 아이들의 모든 요청과 어리광과 생떼를 다 받아주다가는 이렇게 소리친다.

__니들이 이렇게 엄마말 안 들으니까 엄마가 아프지.

(그랬다. 엄마는 어제 아팠다. 하늘(에서 많이 모자라는 것)같은 남편이 와도 거들떠도 안보고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어서 내리잤다. 나는 맘이 짠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 내가 끼어든다. 나는 고작 이렇게 한다.

__니들 내일부터 아침에 TV 보지마. 알았어?
__…
__대답 안해?
__네.
__너는 왜 대답 안해? 내일부터 아침에 TV 보지마 알았어?
__네.

그러나 나는 안다. 아내는 아이들이 TV를 보겠다 하면 보라고 할 것이다. 나는 또 모르는 척 내버려 둘 것이다. 그러다가 아내가 또 힘들다 하면 아이들에게 아침에 TV 보지 말라고 소리나 지를 것이다.

흔히 부모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관성, 거 참 좋은 말이다.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자유

표현의 자유
자유민주연합
자유수호연맹
자유의지
한국자유총연맹
민주자유당
자유형
금리자유화
자유의 여신상
자유부인
두발자유화
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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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이용권
자유투
자유무역협정
교복자유화
자유로
자유시간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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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종
처음 만나는 자유
자유센타웨딩홀
자유시
자유낙하운동
지체부자유
자유게시판
금리자유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어떤 열등감

Mar11_2004_triangle.jpg

어느 날 나우가 이런 포즈를 취하더니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유치원에서 배운 동작인 모양입니다. 저로서는 정말 부러운 유연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사진을 찍어서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어제밤에 나우가 이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을 보며 나우가 한 마디 하더군요.

“삼각형이다.”

순간 저는 모종의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이 녀석은 구도라는 말도 모르면서 구도를 보는구나.’ 하는…